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문단 편집) === 지동설 ===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재발견'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려 '''1,700년 전에'''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타르코스]](BC 310? – BC 230?)가 지동설을 주장했기 때문인데, 그는 심지어 (비록 결과값은 틀렸지만) 과학적인 방법으로 [[지구]], [[달]], [[태양]] 간의 거리도 계산한 인물이다. 다만 이후 [[천동설]]에 완전히 묻혀 지동설은 코페르니쿠스 때에 가서야 재발견된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이탈리아]] 유학 중에 아리스타르코스의 저작을 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는 흔히 알려진 천문학자로서의 이미지보다는, (수학적 계산도 했지만) [[철학자]]에 가까웠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당시는 아직 제대로 된 천체망원경도 없던 때이며[* 실용화된 천체망원경은 한 세기 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발명했다.], [[티코 브라헤]]의 방대하고도 체계적인 관측자료가 쌓이기도 전이었다. 그가 지동설을 주장한 근거는 관측결과[* 관측결과를 참고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당시의 관측결과를 통해 확정적으로 [[지동설]]이 옳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가 아니라 일종의 [[철학]]적 직관이었다.[* 기독교적 사유와 수학적 계산을 통해 설명하고자 했다. [[천동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천동설]]의 경우도 물론 '내가 땅을 디디고 있는 지구가 돌고 있다면 우리가 왜 그걸 못 느끼냐'는 일종의 직관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당시 천동설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 축적된 천문 기록을 바탕으로 프톨레마이오스가 집대성한 천동설 모델이 존재했고, 물론 주전원처럼 철학적으로 작위적인 개념들이 있는 데다가 천체 운행 궤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지만, 이때까지 천동설이 정설인 이유는 가톨릭 교리의 방해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지동설이 천동설보다 정확하고 수학적인 모델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주전원을 도입한 천동설의 궤도 해석은 [[푸리에 해석]]과 수학적으로 동치여서 당시의 관측 결과에 맞는 체계적인 수학적 해석을 내릴 수 있었으며, 코페르니쿠스는 원 궤도로 지구의 궤도를 설명하기 위해 주전원을 천동설 모형보다 더 많이 썼다. 물론 결과적으론 그가 맞았지만 말이다. 물론 그도 다 맞은 건 아니었다. 지동설은 기본적으로 철학적 사유의 결과였기 때문에 모든 천체의 궤도가 완벽한 원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단순 원운동만으로 행성 궤도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그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원과 이심을 갖다가 행성궤도를 설명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적지않게 오류가 생겼다. 이후 [[요하네스 케플러]]에 의해 원이 아니라 '''타원형'''이라는 게 밝혀지고 나서야 이러한 오류들이 시정될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